2014년 5월 12일 월요일

혁신하세요. 안 그러면 죽습니다

그는 “솔직히 4년 전부터 변화를 모색했지만 잘 안 변했다. 3주쯤 노력하다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 일쑤였다”고 그간의 고충을 먼저 말했다.

하지만 “건물을 바꾸고 조직과 직무, 작업흐름까지 바꾸니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양질의 저널리즘을 믿었다”면서 “젊고, 자신 있고, 똑똑한 사람을 뉴스룸으로 불러 혁신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뉴스 혁신에 관한 글로벌 리포트’를 마지막 세션에 발표한 세뇨르는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웹, 모바일, 태블릿 등 플랫폼이 관건이 아니라 그 안에 담아내는, 저널리즘 원칙에 충실한 콘텐츠가 신문산업의 최대 경쟁력임을 새삼 일깨워준 것이다.

그는 ‘혁신’의 대원칙을 빠르고 강한 어조로 설파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이번 총회의 주제인 “혁신하라. 고취하라. 소통하라.(Innovate. Inspire. Interact.)”의 중요성을 가장 실감나게 전하는 길일 것 같다.

“여러분들이 ‘훌륭해,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 중 몇 개를 가져가서 적용하면 혁신을 시작하는 거야’라고 생각하겠죠. 그게 맞을까요? 아니오. 틀렸습니다.”

“혁신은, 현존하는 조직 구조 위로 던져진 ‘아이디어’ 몇 개가 아닙니다.”

“혁신은, 디지털 세대(digital native) 몇 명이나 개성강한 편집장을 고용한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혁신은,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어요. 똑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요.”


“혁신은, 완전한 조직 변환이 있을 때만 일어납니다.”

“문화적, 구조적 변화가 없으면 혁신은 기름진 토양을 찾을 수 없습니다.”

“깊이 있고 철두철미한 조직 변화가 없으면, 현 상태 유지론자들이 조용히 변화를 옭죄어 올 것입니다.”

“전체 수혈이 필요할 때 일회용 반창고로 때우지 마세요.”

“정말 중요한 문제는 저널리즘입니다.”

“훌륭한 글쓰기와 지속적인 재발명에 초점을 맞추는 저널리스트들은 양손에 날개를 달 수 있습니다.”


“파도를 거슬러 헤엄치는 것보다 파도를 타는 게 쉽습니다. 우리는 리더십이 필요하고 혁신가도 필요합니다. 혁신하세요. 안 그러면 죽습니다(Innovate, or Die).”

2014년 3월 21일 금요일

정운현의 『어느 날, 백수』를 읽고 밑줄

실직을 하게 되면 인연이 끊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다. 가족 이외 업무상 인간관계는 대부분 깨지거나 사실상 소용이 없게 된다. 일단 집 밖 출입이 줄면 만남이 줄고, 만남이 줄면 연락이 끊기기 쉽다. 실직자한테 특별한 볼일 없이 전화 거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는 비교적 활동 범위가 넓은 편이었는데도 결과는 비슷했다. 집 근처를 지나는 길에 생각났다며 연락하는 언론계 선후배, 출판사나 단체 등의 원고나 강의 요청 전화, 가뭄에 콩 나듯 걸려오는 지인들의 안부 전화가 전부다. 오는 전화는 그렇고, 내가 특별히 전화할 곳도 별로 없다. 완전히 백수가 되어 집에서 일을 보기 시작한 이후로는 전화요금이 전에 비해 반도 나오지 않는다. 실직자가 되면 일단 외부적인 연락이 급격히 감소하는 게 보통이다.


악조건 속에서도 '좋은 인연'은 잘 살려가야 한다. 마치 화롯불의 불씨와도 같다. 밖에서 만난 '좋은 인연'을 나는 '사회적 피붙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인디언 속담에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는 말이 있다. 그들의 위로와 격려가 있었기에 나는 실직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다.

명함은 그 사람의 직책과 연락처를 알려주는 매개체인 동시에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명함을 내밀지 못하게 되니 사람이 위축되고 작아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혹자는 명함의 상실을 "사회적 자존감의 상실이며 힘의 추락이며 좌절"이라고도 말했다.
백수나 은퇴자는 이제 영영 명함을 가질 수 없을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꿈 명함'을 만들어 갖고 다니면 어떨까? '꿈 명함'이란 과거 직장의 직책에 있던 자리에 자신의 '꿈'을 적어 넣은 명함을 말한다. '일요 화가 OOO', '영원한 블로거 OOO', '평생 자원봉사자 OOO'와 같이 써넣으면 된다.
꿈 명함은 상대방과의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줄 뿐 아니라 상대방에게 자신을 깊이 각인시키는 효과도 있다. 이를 매개로 비슷한 꿈이나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의 만남도 이뤄질 수 있어 사교 수단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꿈 명함'은 자신의 미래 계획을 보여주는 동시에 작은 도전의식을 드러낼 수 있는 훌륭한 장치다. '꿈 명함'을 통해 은퇴자들 스스로 하나의 '개인 브랜드'를 만들어 자신감과 의욕을 되찾을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경우에 따라서는 '꿈 명함'이 일자리로 연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백수나 은퇴자도 자신을 알리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직장 다닐 때는 기록했는데 실직했다고 기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기록 의지에 변화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나는 이런저런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지내왔기 때문에 실직 이후에도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청탁을 받아서 쓰는 글도 더러 있지만 상당수는 그냥 쓰는 것이다. 내게 있어 글쓰기는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방법이자 신경안정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 내가 글쓰기를 존귀하다고 상찬하는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글 쓰는 시간은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 실직자일수록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하다. 별로 기록할 것도 없는 하루라고 여기지 말 일이다. 죽지 않고 살아서 숨 쉬고 하루를 버텨낸 것도 대단한 일이다.
....뭐가 됐든 간에 쓰고 기록하는 습성을 이제라도 들여야 한다. 그래야 내게도 미래가 열린다.

흔히 은퇴자들은 돈만 있으면 노후 준비가 다 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엄청난 착각이다.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넘쳐나는 '시간들'이다. 하루 24시간 중 수면과 일상생활에 소비하는 시간을 13시간 정도로 잡으면 11시간이 남는다. 이를 30년으로 계산하면 무려 12만 시간이나 된다. 이 많은 시간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 말콤 글래드웰은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어느 한 분야에 1만 시간을 투자하면 그 분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은퇴 후 12만 시간이며 열두 가지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건이 하나 있다. 텔레비전을 끄고 매일같이 가는 등산은 조금 줄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은퇴 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시간 관리와 소일거리에 따라 남은 30년 인생의 행 불행이 갈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대체적으로 한국인들은 도서관 이용에 별로 친숙하지 않다. 40~50대 중년 세대들은 더욱 그렇다. 도서관에 많이 가보지 않아서 그렇다.
.... 그런데 요즘은 도서관에서 고전강좌, 독서토론 등 다양한 문화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어 성인들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다. 내가 즐겨찾는 두 도서관에도 이런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여럿 걸려 있다. 최근에 일기 시작한 인문학 붐은 도서관이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대부분 실직자는 시간이 많다. 남아 도는 게 시간이다. 어떤 때는 하루를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일과인 경우도 있다. 마땅히 갈 곳이 없으면 60~70대는 종묘 앞 광장으로, 40~50대는 기원으로 향하는 게 보통이다. 이제 발길을 도서관으로 한 번 돌려보자. 도서관은 나이 제한도 없고 입장료도 없다. 책은 기본이고 어떤 도서관에서는 재미있는 영화를 공짜로 상영하기도 한다.
.... 실직은 경제적인 궁핍은 물론 정신적 피폐를 가져오기 쉽다. 그럴 경우 묘약은 책이 아닐까 싶다. 책에는 동서고금 현인들의 지혜가 담겨 있고 숱한 정보가 살아 넘친다.

.... 가볍고 재미있는 만화책도 좋고 통속소설, 대중잡지도 좋다.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대로 읽어도 좋고, 한 권 다 읽지 않았다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다. 편식은 건강에 해로운지 몰라도 편독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렇게 영혼의 양식이 그득해지면 정신의 건강은 자연히 따라오는 법이다. 소일에, 자기 위안에, 게다가 심신의 건강까지. 이보다 더 좋은 방책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회원이 되면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각종 행사를 문자메시지나 이메일로 안내받을 수 있다. 그리고 가능하면 이런 행사에 자주 참석하는 것이 좋다. 그러다 보면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사교 활동을 할 수도 있다. 나이가 들고 바깥출입이 줄어들수록 사람 만나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실직 초기에 하루빨리 새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화병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되레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일자리가 쉽게 나타나지 않자 얼마 안 되는 퇴직금으로 가게를 차렸다가 홀랑 털어먹기도 하고 급한 마음에 준비 없이 귀농했다가 낭패를 보는 사람도 더러 봤다.

한 번 기회를 잃었다고 해서 전부 잃은 것이 아니다. 남들보다 좀 먼저 직장을 나왔다고 해서 무덤에도 내가 먼저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세상사 1등이 있으면 2등도 있고 3등도 있다. 마라톤 같은 인생에서 역전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준비하기 나름이다. 해외여행 가려고 95세에 영어공부를 시작한 할아버지도 있다지 않은가.

동서고금을 통해 중장년에 대성한 예가 적지 않다.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
.... 65세에 직장에서 은퇴한 할아버지는 95세 생일 때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왜일까? 할아버지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으니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없이 죽기만을 기다렸다. 덧없고 희망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다"며 "그 때 내가 이미 늙어버려 뭔가 시작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한 것이 큰 잘못이었다"고 밝혔다.
95세에 할아버지가 평소 하고 싶던 어학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 째 생일에 95세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백수일수록 더욱 절조있고 품위있는 생활을 추구해야 한다.

2014년 2월 9일 일요일

뉴욕타임스에는 정치부 사회부가 없다

한국의 기자들에게 출입처는 벙커다. 들어가서 안 나온다.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고는 수세적으로 기사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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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뉴욕타임스>에는 정치부 또는 사회부가 없다. 그들은 '영역'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 임무를 나눠 맡는다.
우리의 정치부에 해당하는 일은 <뉴욕타임스> '워싱턴 지사'의 몫이다. 워싱턴에 주재하는 기자들이 백악관, 연방정부, 연방의회 등을 두루 담당한다. 백악관 브리핑룸에 드나드는 전속 기자가 있긴 하지만 대다수는 주요 관청들을 유연하게 넘나든다. 이들은 워싱턴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도 함께 담당한다. 우리의 사회부 기자 노릇도 함께 맡는 것이다.

본사가 있는 뉴욕에는 '시티 데스크'가 있다. 우리의 사회부와 흡사하지만 기자마다 전속 출입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뉴욕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 행정 등을 포괄하면서 느슨하고 넓은 의미의 '전문 (주제) 영역'에 따라 각자의 방식으로 기사를 쓰면, 데스크가 좋은 기사를 선별하여 게재한다.

이런 편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기자들은 말 그대로 '쏘다니는' 수밖에 없다. 관점을 이동하며 기사거리를 찾을 것이다. 갈등의 현장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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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지키고 더 강화해야 하는 것은 출입처 체제가 아니라 정보공개청구 제도를 포함한 '시민의 알 권리' 차원의 각종 제도다.

미국언론의 진화 과정을 살펴보면 전업 기자의 혁신과 함께 그 외곽에 있는 방대한 '프리랜서 기자'들의 위협이 있었다. 기성과 관성에 안주하려는 이른바 유력 매체에 비해 그들 자유 기자들은 끝없이 혁신을 도모해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그것이 곧 유력지를 자극항뎌 언론계 전체의 진화로 귀결됐다.

미국에선 주로 News story 또는 Story라는 단어를 쓴다. 기자가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사를 가져오라"고 호통치는 편집국장이 쓰는 단어는 Story다. 얼핏 들으면  "소설 써서 가져오라"고 기자에게 명령하는 것 같다.
Article은 하나의 단편 기사를 뜻하고 Story는 하나의 테마에 대한 일련의 기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영미 언론인들은 취재보도 과정에서 '단발 보도'가 아니라 '일련의 종합적 기사 체계'를 확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뉴스는 더 이상 '새롭고 충격적인 사실'이 아니다. 모두 알고 있지만 제대로 모르고 있는 사실이 뉴스다. 이를 드러내는 능력이 곧 기자의 자질이다. 어떤 기자는 내러티브, 다른 기자는 분석해설, 또 다른 기자는 조사통계 등 그 무기는 각자 다를 수 있지만 추구하는 바는 같다. 정치권력을 비롯한 여론주도층이 아니라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가는 각자의 방법론을 갖추고 있어야 기자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자의 자격 요건도 변화한다. 공부하고 성찰하고 사색하는 기자가 유능한 기자다.

안수찬, <뉴스가 지겨운 기자-내러티브 탐사보도로 세상을 만나다>, 삼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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