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8일 수요일

블로거는 과연 저널리스트인가?

한국언론재단 최민재 선임연구위원이 쓴 [인터넷 소셜미디어와 저널리즘](한국언론재단)이라는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인용문을 발견했다.

 

로젠(Rosen)이라는 사람이 2005년에 한 책에서 했던 이야긴데, 블로거는 과연 저널리스트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블로거가 환경친화적 개발을 위한 국제회의에 직접 참여하여 그 내용을 취재해 매일매일 회의 전개를 설명했다면 이는 저널리즘이다. 잡지 기자가 사실 확인 없이, 정보원에 대한 추가 인터뷰 없이 보도자료를 약간 수정하여 보도했다면 이는 저널리즘이 아니다. 블로거가 신간을 출간한 저자를 인터뷰하여 글을 썼다면 이는 저널리즘이다. 의견란을 담당하는 칼럼리스트가 특정한 방향을 지닌 잘못된 인상을 주기 위해서 사실을 조작했다면 이는 저널리즘이 아니다. 블로거가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이전의 기록을 검색하고 공인의 주장이 진실이 아님을 발견했다면 이는 저널리즘이다. 기자가 정치인의 주장을 검증없이 반복했다면 이는 저널리즘이 아니다."

 

로젠은 저널리스트로서의 자격이 때로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블로거가 저널리스트인가의 역할 논쟁은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쉽게 줄여서 말하면, 언론인이라고 말하는 자들 중에서도 언론인 자질이 안 되는 이도 있고, 블로거 중에서도 언론인을 능가하는 이들이 있다는 얘기다.

 

명쾌하고 재미있는 정리다.

신문 공정성·객관성도 인터넷에 밀리나

근래에 나오는 '신문'에 대한 각종 조사·연구결과는 한결같이 암담한 내용 일색이다. 신뢰도나 가구구독률, 광고매출 추이 등이 모두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신문은 블로그나 카페·커뮤니티 등 인터넷 소셜미디어보다 공정성·정확성·전문성 평가에서도 밀리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최근 한국언론재단이 발간한 <인터넷 소셜미디어와 저널리즘>(최민재·양승찬 저)은 13세 이상 네티즌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소셜미디어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를 수록했다.


이 조사에서 정보의 특성별 아홉 가지 질문 중 전통미디어인 신문과 방송이 소셜미디어보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항목은 신속성과 시의성 두 가지뿐이었다. 특히 신문은 전통미디어의 강점인 공정성·객관성·정확성 측면에서 인터넷 지식공유사이트보나 낮은 평가를 받았고, 심층성·전문성·다양성·차별성 항목에서는 지식공유사이트와 카페·커뮤니티, 블로그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1년 전과 비교한 미디어 이용량의 증감을 묻는 항목에서도 신문만 평균값 이하를 기록했고, 모든 소셜미디어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년 후 예상 미디어 이용량을 묻는 질문 또한 신문을 제외한 모든 미디어가 평균값 이상을 나타냈다. 매체별로는 지식공유사이트, 카페·커뮤니티, 블로그, 콘텐츠공유사이트 순으로 분석됐다.


사회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미디어를 묻는 질문에서는 아직도 전통미디어가 강세를 보였다. 텔레비전뉴스가 57.9%, 종합일간신문이 18.3%로 각 1·2위를 차지했던 것이다. 다음으로는 지식공유사이트 8.2%, 카페·커뮤니티 5.2%, 블로그 4.6%, 게시판 2.7%, 미니홈피 2.1%, 콘텐츠공유사이트 0.9% 순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소셜미디어를 모두 합치면 22.7%로 종합일간신문을 넘어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이자 책임연구원인 최민재 한국언론재단 선임연구위원은 "미디어 수용자들은 전통미디어의 콘텐츠보다 소셜미디어의 콘텐츠에 주목하고 있고, 향후 이러한 경향성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전통미디어들이 아직까지 경쟁력을 지니고 있을 때 변화된 미디어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구조적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며, 그 방향성은 뉴스콘텐츠 이용자들의 평가에 토대를 두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2009년 9월 22일 화요일

밀레니엄파크 성덕대왕신종의 정체

경주 국립박물관에 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성덕대왕신종(일명 봉덕사종)이다.

 

높이가 3.75미터에 달하고 무게도 18.9톤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의 이 종은 오늘날에도 만들기 힘든 신비의 종이 아닐 수 없다.

 

높이가 3.75미터이니 대략 어른키의 두 배가 넘는다.

종 앞에서 웃고 있는 이는 테레비저널(http://go.idomin.com) 운영자 정부권(파비)씨다.

 

그런데, 진품 성덕대왕 신종보다 무려 다섯배는 족히 커보이는 모조품 성덕대왕 신종을 봤다. 민간업체가 운영하는 보문단지 신라밀레니엄파크 안에 있는 것이었는데, 적어도 건물 5층 높이는 되어 보이는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아니, 아무리 모조품이지만 진품보다 훨씬 크게 만들어놓으면 왜곡 아닌가? 오히려 모조품이기 때문에 더 진품처럼 만들었어야 할텐데 왜 저렇게 만들어놨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바로 이것이다. 정말 어마어마하다.

 

그러다, 나중에 저 뒤쪽에 있는 주공연장으로 가다가 이 모조품 종의 정체를 알고나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알고보니 이건 모조품 종이라기보다, 성덕대왕 신종의 모습을 본뜬 건물이었던 것이다. 1층에는 햄버그와 핫도그를 파는 가게가 있었고, 종의 3분의 2높이쯤에는 창문도 보였다.

 

 

웃기지 않는가? 아무튼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기발하긴 하다.

2009년 9월 9일 수요일

대학 캠퍼스는 벌써 낙엽지는 가을

모처럼 대학 캠퍼스를 찾았다. 대학원 영어시험을 치기 위해서였다.

 

시험 공부를 하는 동안 동네 도서관에 다녔다. 도서관 3층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속에 가을이 있었다.

 

 

벌써 붉거나 노랗게 단풍이 물들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시험일이었다. 시험 시작 30분을 남겨놓고 대학 캠퍼스에 도착했다. 시험 장소인 교실로 올라가기 전에 발길을 멈췄다. '낙엽'이었다. 벌써 낙엽이 수북이 쌓일 정도로 가을을 성큼 내 발 아래에 와 있었던 것이다.

 

사진을 서너 컷 찍었다. 내 발끝도 사진 속에 함께 담았다.

 

2009년 9월 5일 토요일

출입문을 아예 도배해버린 광고스티커

모처럼 아침 산책을 나갔다. 산호공원으로 오르기 전 주택가 골목길에서 어느 가정집 출입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광고스티커들을 봤다. 그야말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주로 중국음식점이나 열쇠가게, 이삿짐센터의 광고였다. '누수방지', '00석유' 광고도 있었다. 한 가게의 스티커가 여러 장인 것도 있었다.

 

 

아마 이 집 주인도 처음엔 떼어내려고 노력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아예 포기한 듯 하다.

 

장삿집 입장에선 이런 광고가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정말 심하다.

2009년 9월 1일 화요일

10년전 디카로 찍은 사진, 지금 봤더니…


햇수로 10년 전인 2000년 처음으로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디카는 우리나라에서 대중화되기 전이었으니, 내 딴엔 꽤 일찍 구입한 것이었다.

기억이 확실하진 않지만 코닥사에서 나온 300만 화소급이었던 것 같다. 그걸 들고 당시 막 발족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 행사에 부지런히 참석하고 다녔는데, 디지털카메라를 가진 사람이 나 혼자 뿐이어서 주로 사진은 내가 찍었다.

그래서 지금 공개하는 사진은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운동의 역사에서도 꽤 소중한 사진자료가 될 것이다.




이건 2000년 10월 22일 거창사건 위령공원 기공식에서 찍은 사진이다. 범국민위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지금 진실화해위원회 김동춘 상임위원(오른쪽에서 세번째)도 보이고, 강정구 교수(두번째)도 보인다.



그날 저녁 열렸던 학술대회 모습이다. 강정구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기공식과 함께 열렸던 위령제 모습이다.



기공식. 김태호 경남도지사도 보인다.



그런데, 이게 웬걸? 오래된 폴더에서 그야말로 오랫만에 당시 사진을 열어봤더니 화질이 요즘 카메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내 기억으론 그 때 당시만 해도 화질이 떨어진다고 느끼진 않았었다.

블로그에서 보기엔 화질이 별로 나쁘지 않다고 여기시는 분들은 클릭하여 크게 보시기 바란다. 낮은 화소수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이건 같은해 12월 23일 경북 문경에서 열렸던 범국민위원회 송년회 겸 운영위원회 모습이다. 이 때도 사진을 찍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위 사진엔 내가 있지만, 아래 사진엔 내가 없다. 내가 찍었기 때문이다.



세월의 흐름으로 디카가 진화함에 따라 내 눈도 함께 진화한 것일까? 아니면 당시엔 괜찮았던 화질이 오랜 세월동안 파일 상태로 컴퓨터속에 보관되는 도중 변질돼 화질이 좋지 않아 보이는 것일까?

이론상으로는 그런 상상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컴퓨터에 보관 중인 파일의 화질이 변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내 눈이 바뀐 것일까?

가장 많이 본 글